멍하니 이미 저수지 한가운데로 사라져 보이지도 않는 캐미라이트 불꽃을 속절없이 기다려보며, 난 아무런 생각 없이 한대 남은 중간대에 이슬에 흠뻑 젖은 떡밥을 달아 던져놓고는 깊은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유성의 꼬리처럼 캄캄한 수면위에 춤을 추던 파란 불꽃의 잔영이 오래도록 아른거리고...

그래, 물고기도 물속에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겠지. 물 밖에서 발버둥 친다고 물고기가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누구나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각자의 세상들. 과연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일까?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쌀쌀맞고 변덕스런 모습이 때때로 얄밉기도 하지만, 양말을 아무 곳에 집어 던져놔도, 출출해 냉장고를 뒤적거려도, 심지어는 술에 취해 변기를 붙들고 있어도, 내 뒤에는 귀에 익은 아내의 목소리가 있었다.

 살림망에서는 간간이 물보라가 이는 소리가 들리고,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녀에게 자랑하고 싶어 열심히 낚았던 잉어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어쩐지 내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만 하다. 가만히 살림망의 입구를 물속에 열어두고 보이지는 않지만 넓은 저수지를 향해 미끄러져 갈 그 녀석들의 모습을 그려보니 비로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이 밝기 전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속이 불편했을 텐데도 그녀는 매무세를 가다듬고 어느 틈엔가 가볍게 화장까지 고친 듯 했다. 그녀는 정말 미안하다고 몇 마디 건네고는 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미안한 걸로 따지면 내가 죽일 놈이지...’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소나마 기분전환을 시켜보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끄집어 내보지만, 나 혼자 한두 마디 하다 그칠 뿐 오히려 자꾸만 어색해지는 느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녀는 내가 미안해 할까봐 가벼운 미소만 지어보일 뿐 어젯밤 일에 대한 미안한 침묵인지, 그녀를 혼자 있게 한 항의의 표현인지, 나로서는 그저 가시방석에 앉은 듯 했다.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모짜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만이 속절없이 흘러나오고, 제3악장의 애수어린 미뉴에트의 선율을 듣다보니 어쩐지 밤새 슬픈 무도회를 다녀온 듯한 생각에 어제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녀 속을 편하게 해주려는 생각에 휴게소에 들려 해장국이라도 하자고 권했지만, 그녀는 극구 사양하더니 커피 한잔으로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렸다.

가능한 한 속도를 천천히 내었지만 결국은 그녀의 차를 세워두었던 주차장에 도착하고 말았다. 잠시 우리는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 듯 머뭇거렸지만 아무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미안함을 꼭 전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부질없이 하얗게 이슬이 내려앉은 그녀 차의 유리창을 닦아주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불쑥 손을 내민다.

"데리고 가줘서 고마웠어요, 안녕히 가세요!"
환한 미소로 그녀는 악수를 청해왔다.
"어, 그래요, 피곤할 텐데 조심해서..."

아~ 왜 나는 늘 이 모양일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녀가 떠난 빈 주차공간만이 공허하게 확대되어 허허롭게 놓여있을 뿐, 난 그곳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녀가 떠난 빈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제 이 이야기도 마쳐야 할 때가 되었다. 그 후로 난 그녀를 보지 못했다. 아니, 그 카페를 찾지 않았으며, 혹시 술자리가 이어지더라도 그곳은 피했다. 굳이 그녀를 멀리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알 수없는 연민에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들 것 같은 두려움에 불안하기만 했다. 그리고 한달 후 상사로부터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카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젊고 매력적인 여자가 새 주인인데 재미있고 서비스도 만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없는 그 카페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져가고, 마침내 난 그녀에 대한 기억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오후 햇살에 숲속 길을 걷던 그녀의 하얀 모자와 미색 블라우스의 눈부신 모습만이 아련한 추억처럼 문득 떠오를 뿐... 그런데 잊고 있던 그녀를 달포 전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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