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고로 잃었다던 아이는 지금 그녀와 있다고 했다. 6년 전 남편과 이혼할 당시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상태였는데, 시어머니의 구박보다 남편의 의처증과 폭행에 만신창이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게 되었고, 세 살이 었던 아이에 대한 양육권마저 빼앗기게 되어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었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은 재혼을 했고, 아이에 대한 접근마저 통제를 하여 차라리 아이의 장래를 위하여 멀리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잊으려고 악착같이 일에만 매달려 있었는데... 몇 년 전, 그러니까 내가 그녀와 가까워지기 얼마 전에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어린 아들이 치료가 어려운 병마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병원으로 달려간 그녀는 호의적이지 못한 전 남편의 가족들과 실랑이를 벌이며 어렵게 아이와 만날 수 있었으나, 이미 아이는 엄마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소아과 병동

과 중환자 병동을 오가고 있었다고 한다. 의사를 붙들고 애원하다시피 사정을 하였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오랫동안 기다리며 치료하는 방법뿐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병명은 '호지킨씨 임파종'이라는 매우 희귀한 림프종양으로 신체 면역계에 이상을 일으키며 치료가 어렵고, 5년간의 생존율이 50~60%밖에 되지 않는 절망적인 병이라는 것이다. 방사선치료와 화학요법의 예후가 고통스럽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아이는 상황에 따라 치료가 병행되고 있었고, 전 남편의 가족은 그녀의 병원출입을 막으며 심한 모멸감과 함께 행패를 부려 고통스럽게 아이의 쾌유만을 빌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한다.그러던 차에 그녀를 그렇게도 싫어하던 시어머니가 그녀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면서 가게를 처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 남편은 이미 아이의 병원치료에 수많은 돈을 쏟아부은 상태였고, 재혼한 부인마저 최근에 재산을 빼돌려 가출을 해버렸으며, 설상가상으로 전 남편은 실직까지 한 상태라 더 이상의 병원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두 차례의 림프종 절제수술에도 더 이상좋아지지 않았고, 일 년 넘도록 아이의 병상을 지키고 있지만 아이는 늘 수면제 없이는 한시도 견딜 수 없기에 늘잠만 자고 있다고 한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지만, 그녀는 아이의 곁을 떠날 수 없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이의 곁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마치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듯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듯 가슴 끝이 심하게 저미어 오는 것을 느끼며 말없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여전하시군요...”

그녀는 한번 슬쩍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애써 태연한척 표정을 고치려 했다.

“하지만 그 잠들어 있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래도... 잠에서 깨어나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그녀는 혈관이 앙상하게 들어난 손가락으로 미간을 가리고 고개를 젓더니 마침내 억지로 참고 있던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꼭 틀어막고는 있었지만 끅끅거리는 신음소리와 함께 격하게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꺼번에 터진 그녀의 오열에 난 손수건을 내민 채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그 슬픔의 무게가 너무도 벅차 감히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난 울고 싶었다. 아니, 아무나 붙들고 따지고 싶었다. 왜, 왜 그녀가 이런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리도 고통 받아야 하는건지... 난 입술을 깨문 채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는 겨우 진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잠시 동안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건네준 손수건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내더니 그제야 잠긴 목소리로 애써 이성을 찾으려 했다.

“죄송해요...”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병실에 있는 전 남편과 교대를 해야 한다고 일어섰다. 난 명함을 건네며 아무 때나 괜찮으니 도울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전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으니...”

그리고는 애써 환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가벼운 목례와 함께 총총히 사라져 갔다.

난 그녀가 얼마나 절실하게 아이에게 매달리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난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뒤돌아 병원 문을 나서며, 난 그날 밤 그녀가 왜 그리도 술에 취해야 했는지, 왜 그리도 격하게 싸워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주차장을 돌아 나오며 한 구석에 놓여있는 눈에 익은 빨간색 소나타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방치가 된 때문인지 세차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빨간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고 앞창 부분만이 겨우 들어나 있을 뿐이었다. 속도를 천천히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녀의 차량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그녀의 차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처지가 느껴지는 듯해 자꾸 마음이 울렁거렸다.

“비라도 흠뻑 쏟아지면 먼지라도 씻길 텐데...”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만, 야속하게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눈부시기만 하다. 눈이 부신 탓일까? 자꾸만 고이는 눈물을 감추어 보려고 선글라스를 깊게 눌러 썼지만, 그래도 눈부심은 멈추질 않는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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