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디지털농업

먼저 디지털시대의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다뤄진 후, 향후 10년 정도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될 것이다. 18세기 말에 1차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으로 시작한 기계화 시대를 열었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전기의 발견으로 시작된 대량생산의 2차 산업혁명 시대를 가져왔다.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후반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화 시대이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컴퓨터 활용이 일상화되면서 아날로그 시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디지털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초반에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 ‘사이버-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으로 특징되며, 이러한 방향으로의 발전은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중요한 요소기술의 적극적 활용을 요구한다. ‘사이버 세계와 물리적 세계의 연결’의 개념이 구체화 된 용어가 바로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일 것이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주창한 개념으로, 컴퓨터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기술이다.

최근 농업분야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용어로 '디지털농업'을 사용한다. 최근의 디지털농업의 개념은 농업이 현실의 물리적 세계뿐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이뤄지는 개념을 일컫는다. 유사한 개념으로 ICT농업, 정밀농업, 스마트농업이 있다. 인터넷 검색서비스에서 ICT농업, 정밀농업, 스마트농업, 디지털농업을 검색하면, 거의 유사한 문서와 이미지가 검색결과물로 나온다. 이러한 용어가 출현한 배경은 주변 첨단기술이 농업에 적용되면서 특정기술을 강조하는 개념일 것이다. ICT농업은 정보통신 기술을 강조한 용어이고, 정밀농업은 농경지 및 작물특성의 공간변이를 강조한 용어이다. 스마트농업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활용을, 디지털농업은 디지털트윈 및 메타버스 기술을 강조한 용어일 것이다. 또한 팜, 파밍, 농업이 혼재하여 사용된다. 팜(farm)은 해당 기술이 도입된 농장, 파밍(farming)은 해당 기술을 활용한 농업 생산활동, 농업(agriculture)은 해당기술이 산업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농산업을 의미한다. 이처럼 ICT농업, 스마트농업, 디지털농업 등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따라 유행어처럼 작명된 부분이 없지 않다. 사실 스마트농업은 ICT농업을 포함할 수밖에 없고, 디지털농업은 스마트농업은 포함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은 특정한 기술을 일컫기보다는 '농경지와 작물특성의 공간변이를 고려한 위치별 맞춤농업'의 전략적인 용어이고, ICT농업, 스마트농업, 디지털농업에 강조된 기술들이 시대에 따라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밀농업의 전략적 개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과거에는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었다면, 최근에는 디지털농업의 요소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특징

▶디지털시대의 농업기계

ICT농업에서 스마트농업으로, 스마트농업에서 디지털농업으로 전환이 가능한 필요충분조건은 ‘데이터의 양’, ‘데이터 통신속도’, ‘컴퓨터 연산속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3가지 조건이 충족한다면, 첫째, 농경지에서는 토양, 미세기상, 작물생육 관련 다양한 데이터들이 보다 많은 지점에서(location), 보다 자주(frequency), 보다 정밀하고 정확하고 질좋은(resolution and precision)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얻어질 것이다. 둘째, 이러한 데이터가 농장의 장비 및 기계들과 소통할 수 있고, 원거리에 있는 서버나 사용자와도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얻어진 데이터를 농장에 위치한 농기계에서 또는 원거리의 컴퓨터에서 가공, 분석,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다. 특히 직접 농장에 있지 않아도 현장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가상의 농장에 그 데이터를 적용해 미래를 예측하고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된다. 요즘은 컴퓨터 게임이 정교하고 현실감이 있듯이, 가상공간에서 농업현장이 투영되고, 농작업이 시뮬레이션 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농장에 디지털농업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고, 충분한 전력공급, 센서 및 제어네트워크, 통신설비 등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원활한 데이터 송수신 및 활용을 위해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개발돼야 한다. 메타버스나 디지털트윈을 구현하기 위해 차원 높은 소프트웨어가 개발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미국, 유럽, 일본과의 많은 기술적, 산업적, 시스템적인 격차가 있다고 판단된다. 농산업체의 규모와 기술수준을 고려할 때,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으면 디지털농업 첨단기술을 보유한 선진국을 추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농업기계로 국한해 미래의 디지털농업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John Deere, CNH, Kubota등 글로벌 선진업체의 기술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산업체와의 기술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John Deere, AGCO 등 글로벌 기업들이 데이터 기반 토털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고, GPS 가이던스 자동조향 등 기술이 농가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유럽은 각 국가별 특성에 맞게 축산·원예·수산분야로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에 ‘ICT-Agri’ 및 ‘Samrt Agri-Food’ 프로젝트를 추진해 농업생산의 스마트화를 넘어, 디지털화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의 Kubota는 2018년 자동조향시스템 탑재 농기계가 제품화한 이후, 원격조작 농업기계 등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지능형 정밀농업과 커넥티드농업을 넘어 디지털전환 기술을 활발히 상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기계산업은 최근 스마트농업, 디지털농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글로벌 선진업체의 자본력과 기술력과 비교해 기술격차를 단기간에 줄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영농현실에 맞고 유사한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디지털농업형 농기계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글로벌 선진사와 차별화된 디지털영농시스템 정립과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농업기계 기술개발이라는 방향성으로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소규모 농경지에 최적화된 농업기계, 사용자 편이성이 극대화된 농업기계, 다양한 작업모듈을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한 명의 작업자가 서로 다른 농경지에서 여러 대의 농업기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시스템, 미래형 동력원을 가진 농업기계 등으로 틈새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선진사와의 차별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디지털농업 시대의 변이관리 농작업

디지털농업 시대의 초연결 농장

▶인력양성을 위한 과제와 제언

교육을 통한 인력양성 없이 모든 산업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디지털농업 시대의 농업기계 산업을 위한 인력양성을 위해서는 첫째, 인력의 수준은 부품 및 완성차 설계, 생산, 보급, 사후관리를 포함한 농기계산업 전방위 인력까지 필요하다. 이는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인력양성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둘째, 기술의 범위는 농업기계는 물론이고, 전기전자, 기계,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즉, 융복합 기술을 보유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2020년부터 농식품부에서 ‘농식품 기술융합 창의인재 양성사업(교육훈련지원-스마트농업)’으로 충남대학교, 경북대학교,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스마트농업 전문연구인력 및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특수대학원이 설립돼 운영중이다. 디지털농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업이 단기간에 추진되기 보다는 커리큘럼을 발전시키며 지속돼야 할 것이다. 셋째, 인력양성은 식량안보라는 농업의 중요성과 농기계산업의 미흡한 자본 등을 고려할 때 정부주도의 정책이 절실하다. 현재 농과계 인력양성 기관이 대부분 국공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산업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부·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정책이 뒷받침된다면, 기본적인 실험·실습조차 어려운 여건에서 부실화되고 있는 농업기계 교육체계를 보완하고 미래농업에 필요한 인력양성을 담당할 인력양성체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