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탈이 걱정되었는지 주인장은 야간순찰을 돌다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와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깊이 잠이 들었지만 아침에 약속이 있어 새벽 일찍 떠나야 한다고 하니 그제야 슬금슬금 어젯밤 일을 털어놓으며 애써 우리 편임을 강조했다. 다소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으나 이야기를 종합해서 유추해보니... 그녀는 차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마도 내게 방해가 될까봐 자판기를 찾아 잠시 식당에 들린 모양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식당도 한산하고 주인 아줌마도 마침 TV를 보고 있었기에 뜬금없이 같이 TV를 시청했다고 한다. 마침 방영 프로그램이 불치의 병에 걸린 꼬마아이와 병간호에 고통 받고 있는 가족의 애환을 그려낸 병상취재 프로그램으로, 백혈병으로 신음하는 까까머리 꼬마의 천진스런 모습이 무척이나 눈물겨워 주인아주머니와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보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늦게 식사 주문하는 조사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주인 아주머니는 경황없이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주인장은 그 사내들과 요즘 조황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나중에 얼핏 보니 그녀는 화장지를 떼어 눈물까지 훔치며 그 프로그램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그녀는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소주 한병과 제육볶음 한 접시를 시켰다고 한다. 아마도 무료한 탓에 소주 한잔 하나보다 생각하고 가끔 주인 아주머니 만 오다가다 그녀와 그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고 것을 보았다고 한다. 여자 혼자 술마시는 것이 영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일행인 내가 오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소주 한 병을 더 시키기에 깜짝 놀라 그녀를 지켜봤는데 멀쩡해 보이긴 했지만 혹시라도 취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허~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저녁때 나와 소주 한 병씩 비운 상태였는데 어쩌자고. 그런데 사건의 발단은 그 때부터였다고 한다. 여자 혼자, 그것도 나이 꽤나 있는 곱상한 모습의 그녀가 소주를 두병씩이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으니 주위의 시선이 있었으리라.

그녀와 좀 떨어진 건너편 테이블에 중년사내 서너 명이 시끌벅적하게 술들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중의 한 사내가 그녀에게 농을 걸어온 모양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 사내가 그녀에게 낚시하러 왔느냐, 누구하고 왔느냐, 왜 혼자 술을 마시느냐, 술을 잘 하시는 것 같은데 웬만하면 우리와 합석하자... 뭐 이런 식으로 추근거리는 것 같았고, 그녀가 대꾸도 하지 않자 그 사내가 약이 올랐는지 술 한 잔 따라드리겠다고 그녀에게 술 잔을 내밀다가 싸움이 되었다고 한다.

"저리 꺼지라고 했잖아!" 그녀 입에서 터져 나온 소리에 주인장은 비로소 그때부터 개입을 했지만, 이미 그 사내들과 험악한 상황으로 전개가 되고 있어서 진화가 어려웠다고 한다. 글쎄, 주인장이 나도 없는데 과연 그녀를 도우려 했는지는 별로 믿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그녀 또한 뭔가 억울한 상황이었기에 쉽게 물러서지 않았으리라 추측이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그녀의 쏘아붙이는 독설과 수세에 몰린 사내들의 오기와 반발로 쉽게 수그러들지 않은 듯 했다.

"씨발! 여자들이 저렇게 술 처먹고 다니니 요즘 애들 교육이 이 모양 이 꼴이지..." 약이 바짝 오른 한 사내가 비아냥거리듯 그녀에게 욕설을 하고... "니 애새끼나 똑바로 교육시켜!" 그녀는 말릴 틈도 없이 그 사내의 얼굴에 소주 잔의 술을 뿌려버렸다고 한다. 더 이상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상황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술장사에 이력이 난 그녀가 그런 사내들의 위세에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도심 한복판의 점잖은 신사들 상대하는 술집도 아닌데 어쩌자고 이런 험악한 곳에서 혼자 술을 마실까? 낚시터라고 하는 곳이 남성들의 전유물인양 여성들에게 그리 개방적이지 못한 것이 우리네 현실인데. 여러 부류의 남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보니 거칠 수밖에 없는 속성에 대해 미리 귀띔을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조용한 그녀 성격이라 내게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혼자 내버려 두고 나 혼자 낚시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속이 상했으리라. 홧김에 술 한 잔 더 한다는게 그 녀석들이 찝쩍거리며 불을 질렀으니... 이 미안한 마음을 그녀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 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곤경에 처해 심하게 마음이 상했을 그녀를 위로하고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To be continued >

편집부  csk.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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