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자리였다. 자초지종을 파악하고 그녀의 역성을 들기에는 주위의 시선이 너무도 따가웠고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는 것만이 상책이었다. 억지로 그녀를 끌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곳의 모든 시선이 뒤통수에 날카롭게 꽂이고 있는 것을 느끼며...
"미친년...!"

겨우 문밖을 벗어나 어둠속으로 접어드는데 사내들 중 누군가가 읊조리는 희미한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주인장이 어서 사모님을 방갈로로 모시라고 애원하며 떠민다. 그래, 못들은 척 사라지자...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는데 자꾸만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뒤돌아가 그녀석의 턱이라도 한방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난 겁쟁이였다. 아니, 떳떳치 못한 내 자신이 들어 날까봐 줄행랑을 치는 비겁한 녀석이었다.

겨우 어둠속으로 접어들어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그녀를 억지로 업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져 왔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몰려 그들이 조롱하고 있을 모습들을 생각하니 억울함이 복받쳐 견딜 수가 없었다. 자동소총이라도 있다면 가서 모두 갈겨주고 싶었다. 아니 수류탄 열개쯤이라도 까서 던져 넣고 싶었다.

그녀를 업고 한참을 서성이다 그녀가 진정이 된듯하여 방갈로로 들어가 자리를 폈다. 그녀는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취했지만 연신 부장님 죄송하다고만 중얼거리고... 겨우 달래 자리에 눕히자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엇인지 모르지만 대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정리할 엄두조차 생각나질 않았다. 아무튼 그녀가 술이 조금이라도 깨는 데로 날이 밝기 전에 이곳을 떠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담배라도 피워 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든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새삼 그녀가 측은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멀리 관리소의 희미한 불빛은 여전한데 세상은 변함없듯 고요함에 빠져있고, 그렇게 한참을 방갈로 앞에서 서성이다 문득 펼쳐놓은 낚시대가 생각나 걷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재차 그녀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좌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기가 막힌 낚시여행이군. 난생처음 외간여자와 여행을 떠나고,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박을 만나고, 이 모두가 그녀가 행운을 가져온 신비의 전령이라 생각했는데... 있는 망신, 없는 망신에 낯 뜨거워 오밤중에 줄행랑을 쳐야할 팔자라니...

어처구니없는 처지를 푸념하며 맥없이 수면을 바라보는데... 어라? 저수지 한가운데 파란 불빛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마치 요술세계의 한 장면같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낚시찌의 캐미라이트 불빛이 이리저리 저수지 한가운데서 오르내리는 멋진 환상의 연무(連舞)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누군가 줄을 터뜨린 모양이군... 멋진 모습에 감탄하다가 불현듯 내 낚시대를 살펴보니... 중간대의 찌는 물살에 흐른 듯 좌대 가까이 흘러와 있고, 긴대의 찌는 보이질 않는다. 엉겁결 긴대를 들어보니 허전하다. 이런, 제기랄! 내 대를 치고 나간 모양이군... 황급히 걷어 살펴보니 초릿대가 없다. 2번대 앞부분이 터져버린 것이다. 다행히 뒤꽂이를 달아 두었기에 대는 매달려 있었던 모양이다.
알 수없는 미소가 번졌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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