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농업학회 창립 주도…스마트 농업 추세 맞춰 융복합 추진해야
8차 기본계획 중 수리인력 양성 강조…‘미래인력 양성센터’ 설립 필요

충남대 정문을 지나치는 도로 너머에 있던 땅들은 10여년 전만해도 몇 개 건물만 듬성듬성 있었던 갈빛 토양에 잡초만 무성했던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 곳 사람들이 ‘세느강’이라 별칭했던 작은 시냇물가도 그곳에 있었다.

다시 찾은 그 곳은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신축건물들이 각을 지어 줄을 섰고 사이도로도 깨끗이 정비됐고 도로가 가로수도 보기 좋게 길가에 나란히 서있었다. 10월 어느 저녁, 그 곳은 업무를 끝낸 직장인들이 가볍게 소주를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여느 번화가와 다를 바 없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기분 좋네요. 대접받는거 같고요”

소탈하게 웃으며 위생물걸레에 손을 닦고 있는 그는 정선옥 교수(사진)였다. 충남대 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이자 한국농업기계학회 국제협력분과에 몸담고 있음을 그의 명함이 말해줬다. 하지만 이미 농축산기계업계에선 학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사 중 하나로 이름이 알려져 있고 전에도 몇 번 본적이 있어 낯이 익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단호한듯한 자상한 말투.

“자제를 하는 데 몇잔 돌아 이성을 잃으면 폭음을 해서 문제에요. 대학 다닐 때는 맨날 쓰러져 자고 그랬죠. 학교(강의) 다니면서는 그럴 일 별로 없어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술과 친구가 돼 어울리는 법이다. 정 교수는 이어 이중용 서울대 교수, 최창현 성균관대 교수 등 술을 좋아하는 학계 인사들을 줄줄이 꿴다. 술자리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맛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일만 하면 내가 뭐하러 일을 해요. 사는 목적이 일하러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행복하려구 태어난거지. 저는 이런 얘긴 뭐하지만 한달에 한번은 무조건 스트레스 풉니다.”

스폰지는 물을 짜내야 물기를 빨아들일 수 있다. 스트레스도 풀어야 다음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없다.

“오늘 조금 먹어야지 했는데 벌써 저는 올랐습니다”

이제 겨우 15분이 지났는데 너무 반가운 나머지 초반에 무리했나보다. 이제 일 얘기를 하며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술에 녹여버릴 때가 됐다.

“전통 농기계도 이젠 차별화돼야 해요. 농림축산식품부 허가받은 사단법인 정밀농업학회를 창립했는데 어떻게 만들었냐면 여러 학회가 있는데 융합하는 학회, 미래지향적인 학회가 없는 겁니다. 요즘에는 스마트, ICT가 나오니까 농축산기계도 이젠 작업만 하면 안돼요. 작업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원격해서 보는 기능도 추가해야 하는 겁니다.”

한국정밀농업학회는 최영수 전남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지역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가 회장으로 선출돼 이끌고 있으며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최 교수는 미국 텍사스 A&M 대학 및 USDA 객원교수, 농식품부 농림과학기술정책심의회 의원, 국립농업과학원 겸임농업연구관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농업기계학회 총괄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정밀농업은 스마트농업과 같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개념이 애매하다. 일단 글자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면 할 필요가 없어요. 시시각각 변하고 생태계가 변하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나오듯이 정밀농업도 어제는 이거 했는데 오늘은 이거 하는 식에요. 예를 들면 정밀농업하면 미국의 노지부터 출발했는데 유럽가면서 화훼, 축산, 과수까지 하더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계속 변하는거죠. 기계보다 이제는 기자재로 봐야 해요. 첨단농업이 되고 있고 시설이 많습니다. 과수원도 시설이고 축산도 시설이고 노지도 벼농사는 그렇지만 밭작물은 자동화로 가야 되요. 또 기자재도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되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원격으로 무인으로 해야 되고요. 정밀농업학회를 만든 이유가 그런 개념을 전공에서만 따로 따로 해서는 그림이 안나오는거고 그래서 융복합을 해야 하는 겁니다.”

“첨단으로 가야 해요. IT강국이고 조그만 나라에서 많이 생산해서 물량으로 경쟁할 수는 없는 거죠. 스마트농업쪽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국내 정밀농업을 주도하고 있는 정 교수의 설명이지만 아직은 그 개념이 확 들어오지 않는다.
“정밀농업은 개념적인 겁니다. 그전에 획일적으로 하던 것을 정보를 이용해서 여기는 다르고 여기는 다르게 작업하자 그게 딱 정밀농업인 거에요. 손으로 하던 기계로 하던 그거와 무관하게 방법론으로 정밀농업이라는 겁니다. 맞춤형으로 하자는 것이죠. 정밀농업은 학문적인 용어거든요.”

농업용어사전은 정밀농업(precision farming)을 농산물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변이정보를 탐색해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 및 처리과정을 거쳐 생산물의 공간적 변이를 최소화하는 농업기술이라 정의하고 있다. 노지를 예로 들면 비료·농약·물 등을 농지 전체에 골고루 살포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농지를 세분화·구역화해 토질과 위치 특성에 맞도록 관리하고 모든 작업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는 식이다. 과수원의 경우 위성항법장치(GPS)와 전기전도도(EC)를 이용해 토양상태를 측정하고 동력분무기가 나무의 상태와 재식밀도에 맞춰 필요한 곳만 농약을 뿌리는 것이다.

정밀농업은 식량생산의 한계와 환경보전 문제를 동시해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전체농가의 40% 정도가 정밀농업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옥수수·콩·밀 등 대면적의 농장을 중심으로 이 기술이 적용되고 있어 ‘한국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교수의 역할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주는 정보보다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어요. 유럽이나 이런 데서 보고와가지고 눈이 높아요. 예를 들어 500두 이상 키우는 한우농가에서는 발정시스템 등을 다 도입해서 첨단으로 가고 있죠. 그렇지 않은 농가가 더 많기도 하지만. 이런 농가들은 그걸 알고 싶어해요. 새로운 것, 새로운 기술, 새롭게 나온 연구개발성과나 시제품이나 특허라든지”

정 교수는 지금 농축산기계의 미래를 보고 얘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현재를 바라보고 그 말을 이해하려 하고 있는 것이고. 정밀농업이나 첨단농가들은 미래의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진행형’의 양상을 띠고 있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멈춰 세워서 이해하려는 시도. ‘고정관념’이란 게 그런게 아닐까.

농식품부가 마련중인 ‘제8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으로 술잔과 함께 화제가 옮겨졌다.

“정부의 기본계획 발표가 당초 10월 말에서 11월 말로 한달 연기됐어요. 이중용 교수가 용역을 맡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결정하겠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정부에서 기본 아이디어를 갖고 용역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나라 행정, 농림부 정책 등을 먼저 알고 이런 거 하고 싶다며 요구를 했어야 해요. 아무리 좋은 걸 갖다줘도 정부가 아이디어가 없으면 채택이 안됩니다. 아무리 새로운 걸 줘도 정부가 이해를 못하고 필요성을 못느끼면 그렇다는 겁니다. 어잿튼 흘러가는 게 스마트팜으로 갈거에요. 새로운 게 그거 밖에 없잖습니까.”

어느 덧 술 자리의 진지함은 극에 달했고 너무 딱딱한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살짝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침표를 찍기 전에 방점을 찍을 것 같다.

“기본계획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게 수리인력 양성에요. ICT 스마트 농기계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 수리를 누가 담당할거냐 하는 거죠. 미래는 인력이고, 교육, 자격증 문제 등 다부처 얘긴데 어느 정부 부처도 주도적으로 안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해결 안되면 우리나라 농업은 안되요. ICT 등 신기술 관련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이죠”

정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8차 기본계획’ 용역과제에서는 농업기계화 세부 실행계획으로 ‘수리전문인력 양성’을 분류해 다루고 있다. 양성체계 미흡, 전문경력관 역할과 교육역량 미흡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문인력 양성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안내용은 △농업기계 관리 전문인력 양성체계 개선 및 활성화 지원 △농업기계 관리 전문인력 일자리 창출 및 취업활성화 △농업기계 전문경력관 역할 재정립 및 교육 활성화 등 3가지다. 양성체계 개선 및 활성화 부문에서는 수리봉사인력 연 200명, 임대사업인력 연 100명 배출과 도 농업기술원 교육역량 강화를 위해 가칭 ‘미래인력 양성센터’ 설립·운영이 눈에 띈다. 전문인력 일자리 창출 부문에서는 전문교육 이수 및 관련 자격증 소지자 우대가 전문경력관 역할 재정립 및 교육활성화 부문에서는 밭작물·시설원예·과수·축산·스마트팜 등 신기술 역량강화 필요, 전문교육인력 및 조직개선, 시설첨단화 신규 교육프로그램 및 교재개발 지원이 눈에 들어온다.

정 교수는 농기계산업을 걱정하고 그 미래를 바라보며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이 장악한 거리를 가로등 환한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정선옥 교수 現 약력>
□ 충남대 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학과장
□ 한국농업기계학회 종신회원
□ 인도 농공학회 종신회원
□ 국제농업개발학회 이사
□ 미국농공학회 회원
□ 한국정밀농업학회 부회장

선태규  midas0718@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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