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난 양재동의 하나로마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료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그녀가 말한 빨간색 소나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차로 옮겨 타기로 했기에 바로 옆에 차를 대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대낮에 본 그녀가 이리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니... 검정 스판의 레깅스바지와 가슴이 깊게 패인 미색 블라우스에 챙이 넓은 장식모자, 알이 동그란 선글라스의 그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연예인으로 착각할 모습이다.

남들의 시선을 끌기에 딱 좋은 모습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이렇게 밖에서 은밀히 만나는 반가움에 서둘러 출발을 했다. 목적지는 언젠가 몇 번 찾아갔다가 꽝을 친 용인 원삼면의 고초골로 정했다. 굳이 조황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조용한 장소로는 그만이라...

자연풍광도 운치 있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달빛아래 그녀와의 시간, 생각만 해도 왠지 감상에 젖어드는 그런 설레는 기분이 었다. 토요일 오후라 고속도로가 여러 곳 정체되긴 했지만,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과 들의 모습은 가을의 정취 그 자체였다. 그녀와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보니 어느덧 양지IC, 원삼면 초입의 안흥수 낚시점에 들려 떡밥과 채비를 약간 구입하고 고초골로 들어섰다.

늘 괄괄한 주인장께 요즘 조황을 물으니 신통치 않은지 그나마 조황이 괜찮은 관리소 앞쪽에 앉으라고 추천한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여러 조사님들로 북적거려 영 신경이 쓰인다. 건너편 조용한 곳으로 추천해 달라고 하니, 주인장은 차안의 그녀 모습을 힐끔거리더니 조황은 장담 못한지만 다리건너 곳부리가 조용하다며 그쪽을 추천하고, 파라솔을 얻어 곳부리 나무언덕 아래편에 자리를 잡고 서둘러 대를 편성했다.

낚시야 뭐 핑계거리지만, 그래도 몇 마리 손맛은 봐야겠고, 그녀에게 자랑거리도 있어야겠기에. 3.6칸, 3.2칸, 2.8칸 세대를 편성하고 떡밥과 어분도 정성껏 개어놓고... 그녀는 신기한 듯 옆 에서 이것저것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을 쏟아낸다. 난 마치 별나라에서 온 왕자가 된 듯 자상하게 채비설명을 해주고, 호기있게 그녀 뒤에서 손목을 잡고 채비 던지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입질이 없자 그녀는 곧 흥미를 잃고 밤과 도토리를 줍겠다고 숲길을 거닌다. 멀리 가을 오후의 햇살아래 하얀 모자와 미색 블라우스가 누부시고... 마치 영화 '갯츠비'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순수한 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난 꿈을 꾸는 듯 묘한 기분에 취해 있다가 생각난 듯 머리를 젓고는 열심히 찌를 응시했다. 벌써 두 시간째 밑밥을 주었건만 찌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주인장은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자꾸 이곳에 들리며 조황을 물어온다. 밤에는 추우니 뒤편 방갈로를 그냥 쓰라고 청소해 두었단다. 나는 마치 무엇이라도 들킨 듯 그래도 밤새 해봐야죠 겸연쩍게 너스레를 떨고... 이제 해가 뉘엿뉘엿 산마루에 걸리고 더위도 수그러드는데, 그녀에게 보여줄 붕어 한 마리 입질도 없다니... 끙! 그녀는 어느새 제법 소담스런 밤송이를 한 봉지 안고 돌아왔다. 춥다고 하여 내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고, 그녀가 담아온 보온물병의 헤즐넛 원두커피를 마시며 함께하는 평온한 시간... 아~ 저 붉게 물든 노을만큼이나 온 세상이 행복해 보였다. 주인장 아들인지 청년 하나가 노란색병을 들고 나타나 떡밥통을 달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조황이 좋지를 않아 특별히 비상수단이라고... 알고 보니 돼지정액을 떡밥에 섞어 쓰면 붕어들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든단다. 그녀와 나는 어이가 없어 마주보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효과도 별반 무소득이고, 그녀는 짓궂게 사람의 정액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을 걸고... 그렇게 즐거운 저녁시간이었다. 비록 한 마리도 낚지 못했지만 어둠이 깔리면 한두 마리 입질은 오겠지 믿으며...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댄 그녀의 목덜미에서 향긋한 체취와 그녀 특유의 쁘아죵 향수내음... 뭉클한 그녀의 가슴이 어깨에 느껴질 때마다 숨이 막히는 듯 했다.

아이고~ 이를 어찌하면 좋노~. 낚시고 뭐고 머릿속이 어지럽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해거름이 밀려오며 제법 추위도 느껴져 저녁이나 먹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비록 우정을 표방하고 함께 낚시하겠다고 이리로 왔지만...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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