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가격표시제, ‘법’ 따로 ‘현실’ 따로
‘실효성’ 높이기 위해 현장문제 반영해야

어느 조직이든 영(令)이 제대로 서야 한다.

집단과 조직, 사회와 학교, 가정에도 영이 바로 서야 분란을 막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물며 국가(國家)인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일찍이 유교(儒敎)에서는 국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상으로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을 제시하고 있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며, 글자 그대로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하고 있다. 오륜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으로,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 부부, 어른과 어린이, 친구 간에 지켜야할 도리와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나라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실망스럽기 한이 없다. 영을 세워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영은 밑에서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따라오게끔 하는 것이 영이다.

이와 같은 일이 우리 농기계산업 전반에도 만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보게 된다. 얼마 전 정부가 7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농기계 가격표시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전국 30여개 대리점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해봤다. 유감스럽게도 단 한 곳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곳이 없었다.

경북의 어느 대리점은 가격표시제를 언제부터 시행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고, 충북의 어느 대리점은 남의 눈치를 살피며 남들이 가격표시제를 제대로 지키고 있으면 그때 중간만 가자는 생각으로 손을 놓고 있었다. 또한 강화의 모 대리점은 일부 가격표시를 하고 있었지만 농민과 흥정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할인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격표시가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스스로 떼어낸 경우에 해당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 화성의 모 대리점은 수리정비 인력이 부족해 당장 죽을 지경인데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가격표나 붙이고 있겠냐고 하소연을 했고, 전북의 모 대리점은 최근의 정국을 빗대 노골적으로 가격표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난맥상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책과 현장의 교감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정부의 정책의지는 가격표시를 통해 그동안 거품이 낀 농기계가격의 신뢰성을 회복하고, 투명한 거래를 통해 농기계산업의 건전한 유통질서를 바로세우기 위한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받아드리는 이해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를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격표시를 한다고 해도 농민은 흥정을 통해 가격을 깎으려 들고, 당장 생계가 급한 대리점 입장에서는 할인을 해서라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격표시가 흥정의 기준선이 되기 때문에 제대로 가격표를 붙여놓은 대리점만 손해는 보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융자지원금을 좀 더 타내려고 하는 농민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어 대부분 융자지원신청을 높여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는 현실성이 있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현장의 유통구조가 이러한데 강압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단속을 한다고 순순히 따라오길 바란다면 너무도 현장을 모르는 소치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표시제도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다만 현장의 불가피성을 살펴 어떻게 정착시킬지에 대한 슬기로운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계도기간을 거치고 본격 시행까지 두 달여가 남았다. 현장의 혼란과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현장소통과 해법마련을 기대해 본다.

발행인 정상진

정상진  jsj1234@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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