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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매실 씨 빼는 장치의 숨은 이야기"예고없는 불행···그러나 함께 키워가는 희망”

 농기계 사랑방 

[에세이] 매실 씨 빼는 장치의 숨은 이야기

 

"예고없는 불행···그러나 함께 키워가는 희망”

시련의 시작 

앞이 훤히 보이는 사람들에게 시력이 사라져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 같다. 고작 안다고 해봐야, 시력은 회복되지 않은 질병이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안경을 쓰는 것도 불편한 상황에서 만약 시력을 모두 읽어버린다면, 그건 결코 나에게는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두려움이고, 암흑을 넘어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일 것 같다.

대학생 K. 대학에서 농업기계를 전공한 K는 졸업과 동시에 시험을 보고 농촌진흥청 농업기계화연구소에 입사했다. 입사후 줄곧 농산가공분야쪽 연구만 수행하며 현장에서 필요한 기계를 많이 연구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직원이 친 동생을 소개해줘서 아리따운 아내도 얻었다. 삼신할머니께서 예쁜 공주님도 점지해주셔서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던 그에게 스멀스멀 불행이 찾아왔다. 어느 날 눈이 조금씩 침침해지는 것을 느낀 K는 병원에 들렀고,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주변의 시야가 차츰 좁아져 나중에는 붓대롱처럼 시야가 좁아졌다가 마침내 시력을 잃게 되는 질환이다. 알고 보니, 형님도 그런 병을 앓고 있는 희소질환이었다. 그렇게 K는 후천성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K는 그 어떤 연구원보다 열심히 연구했다. 곧 눈이 어두워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보일 때, 하나라도 더 보고자 양파탈피기 개발, 시력을 다 잃은 뒤에도 학교급식 지원센터 기계개발, 엽근채류 전처리시설 기계개발 등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나중에야 들은 말이지만, “예고된 불행과 절대적인 고통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아침마다 볼 수 있는 게 줄어들고, 보이지 않는 시간은 길어져 갈 때마다 몇 번이고 나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참척(慘慽)의 아픔  

농촌진흥청이 전주로 이전하면서 K 가족도 전주로 이전했다. 아내도 공무직으로 자리를 잡고, 멋진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던 외동딸은 전주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해서 한껏 부풀어 오른 청춘을 맘껏 즐겼다.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잘 다녀오라고 웃으며 인사했던 딸은, 퇴근해서 집에 가보니 거실에 가만히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참척(慘慽),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한 가지 죽은 자식만을 생각하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극한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살아있는 그 어떤 누구도 감히 위로할 수 없는 고통이다. K가 평소에 남을 먼저 생각하고 늘 배려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직장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서서 아픔을 함께했다. 부서장부터 회사에 연가를 내고 장례식을 도왔다. 아니 도운 게 아니라 나서서 치렀다. 눈이 보이지 않는 K를 대신해서 장례식에 필요한 모든 결정을 동료들이 했다. 살아남은 자를 생각해서 식장 꾸미는 것은 간단하게 꾸렸지만, 망자의 집이라는 유골함은 20대 여대생의 취향에 맞춰 가장 화려한 것으로 준비했다. 유골함도 볼 수 없는 K가 앉아서 만져볼 수 있게 낮은 층에 배치했다. 그렇게 폭풍 같은 2~3일이 지나고 다들 지쳐 쓰러져 흘러가는 시간을 온몸으로 견뎠다.

딸이 하늘나라로 간 서너 달 뒤 보험료가 나왔다. 그 보험료가 다시 한 번 마음을 찢었지만, 하나뿐인 딸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던 K 부부는 큰 결심을 했다. 먼저 간 딸을 가슴에 묻었지만, 딸의 꿈은 잊을 수 없었기에, 못다 이룬 딸의 꿈을 위로하고 같은 길을 걷는 다른 아들과 딸들을 격려하기로 마음먹고 보험금을 장학금으로 냈다. “딸이 허망하게 떠나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못다 이룬 꿈을 동기와 후배들이 이뤄주고, 딸의 발자취를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고통 잊기  

하늘이 무너진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K에게 회사 동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고작 해줄 수 있는 게 일을 많이 줘서 먼저 간 딸 생각이 날 틈이 없도록 하자는 것뿐. K는 연구소에 들어온 이후 줄곧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수확후 분야만 연구해왔다. 최근들에 매실수요가 답보상태에 든 것을 늘 마음에 두고 있던 K.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던 회사 동료들은 K가 매실 씨 빼는 기계를 개발해줄 것을 부탁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에게 칼날을 달아 매실 씨를 빼는 기계를 개발해달라고 한 것이다. K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업무에 매진해서 딴 생각 못하게 만들기에는 그보다 좋은 주제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관리자 입장에서는 쉽게 허락할 수 없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관리자의 허락이 떨어졌다. 관리자는 한 술 더 떠서, 개발한 기계를 농민들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하고, 농식품부 기자실에 가서 브리핑도 하며, 방송국 카메라 기자들도 불러 전국방송에 내자고 했다. 당초에 동료들이 생각한 것보다 오히려 더 키운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회사 동료들은 K가 매실 생각만 할 수 있도록 3D 프린터로 매실 모형을 만들어주고, 모형을 어떤 틀에 담아서 씨를 뺄지 틀 모양을 만들어서 전해줬다. K는 언제나 그 모형을 들고 다녔다. 낮이건 밤이건, 잘 때건 깨어있을 때건, 밥을 먹을 때건 술을 마실 때건, 그는 늘 매실 모형을 손에 들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K는 모든 것을 손으로 만져가면서 매실 씨 빼는 장치를 만들어 나갔다. 씨를 밀어내는 칼날 모양도 직접 설계하고, 칼날을 움직이는 공압회로도 직접 설계했다. 회사 동료들은 K가 매실 씨 빼는 데만 몰두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했다. 늦은 밤이건 주말이건 K가 회사에 있을 때는 늘 동료들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어떤 때는 K와 같이 있고, 또 어떤 때는 K 모르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응원했다. 무엇보다도 사고가나거나 다치면 안되기에...

 

 작은 시련  

농촌진흥청 연구원이 연구한 결과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꼼꼼한 평가를 받는다. 내부 직원들 평가도 있고, 외부 전문가들 평가도 있으며, 현장의 농민들 평가도 있다. 가장 무섭고 날카로운 평가는 농민이 직접 연구성과를 경험하고 내리는 현장평가이다. 현장평가 때 방송국 카메라가 와서 촬영을 하면 그 긴장도는 훨씬 더 올라간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며 녹화하는 카메라 앞에서는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모든 일을 K에게 맡겼다. 일부러 기계장치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브리핑 자료도 K가 직접 작성하도록 했고, 현장에서 농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료도 직접 작성하게 했다. 관리자도 일부러 수차례 재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털끝만큼의 실수도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해 나갔다. 드디어 청매실이 조금씩 커가고, 매실이 가장 많이 나오는 6월 중순에 광양시농업기술센터에서 현장평가회를 하기로 했다. 그 날에 맞춰 농식품부 기자실에서 브리핑도 하기로 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매실 씨 빼는 장치도 완성되었고, 브리핑 자료와 보도자료도 다 만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광양으로 기계를 옮겨서 화요일에 매실재배 농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평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매실액(매실청)으로만 먹던 매실의 씨를 빼면 장아찌, 통조림, 주스, 잼 등 다양한 가공품으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기에, “기계로 매실 씨 빼고 자르니 ‘농가 소득 활짝’”이라는 멋진 제목도 뽑아 놓았다.

광양으로 출발하기 사흘 전인 금요일, 불길한 전화벨이 울렸다. 다른 중요한 내용을 브리핑해야 하기에 다음 주에 매실 씨 빼는 장치 브리핑을 할 수 없다는 담당부서의 연락이었다. K가 먼저 간 딸내미 생각하지 않고 일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주위 동료들이 온 힘을 기울였는데, 폭풍우 몰아치듯 정신없이 밀어부쳐 기계를 만들었는데, 지금 와서 브리핑을 할 수 없다니.

부서장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동안 다른 생각 못하게 열심히 달려왔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담당부서와 싸워서 기어코 브리핑을 하도록 해야 하는가. 늘 그렇듯이 관리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리고 미루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 "담당부서 의견을 존중해서 브리핑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농민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브리핑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사흘 뒤 월요일 아침에 K가 개발한 기계를 싣고 광양으로 출발합시다.”

세상살이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시련이 있게 마련이다. K에게 그 어떤 고난이 와도 동료는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두 손 꼭 잡고 함께 느끼며 같이 걸어갈 것이다. 참척이라는 큰 시련도 함께 이겨내고 있는데, 그 어떤 아픔인들 견디지 못할 손가.

 

 희망을 찾아  

6월 17일 월요일 아침, 5톤 트럭에 매실 씨 빼는 기계를 싣고 광양시농업기술센터로 출발. 오후에 기계장치를 현장에 설치했다. 6월 18일 화요일, 예정대로 매실재배 농민들에게 기계를 선보였다. 기계장치 개발과 설명 등 모든 준비는 K가 짠 시나리오대로 일사천리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다만, K를 대신해서 부서장의 입을 통해 설명했다. 동료들이 농민들 앞에서 매실 씨 빼는 장치를 설명하고 칭찬을 들을 때 K는 먼발치에서 그 모든 광경을 귀로 듣고 있었다. 행사가 다 끝나고 K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았다. 감회가 어떤지는 묻지 않았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기에.

여름이 시작되었다. 작년 이맘때 참척의 아픔을 겪은 K. 비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 아픔은 별로 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 아픔을 생각하는 시간만큼은 좀 적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내년에는 그 아픔이 조금 더 줄고, 내후년이 되면 그렇게 줄어든 아픔이 조금은 더 작아지길 기대한다. 줄어든 아픔에 비례해서 K의 미소는 한 번 더 늘고, 동시에 K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농가소득은 조금씩 더 늘어나길 희망한다. 먼저 간 딸도 그렇게 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글. 성제훈 국립농업과학원 수확후관리과장

 

편집부  jsj1234@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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