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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비행기 환승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한참 이슈였던 적이 있었다. 과연 기계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기계와의 싸움은 어떻게 전개될까? 설마 바둑계 최고수가 기계에게 지기야 하겠어? 바둑을 잘 모르지만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가벼운 흥분마저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좀 더 우위였음하는 바람과 응원을 보내며 내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새삼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속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기계와의 싸움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다. 바둑계 세계랭킹 1위라는 중국의 커제도 그 뒤에 알파고에게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묘한 허탈감과 상실감, 알 수 없 는 두려움까지, 한동안 기분 나쁜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졸업 후 1980년대 중반에 입사한 회사는 제법 규모도 있고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브랜드 의류를 수출하던 소위 잘나가는 기업이었지만 컴퓨터가 없었다. 장부를 수기로 정리해 아침마다 결재서류를 상사에게 올리는 게 제일 큰 업무의 하나였고, 전언통신문 작성에 쓰였던 텔렉스는 전담 여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1990년 초쯤으로 기억한다. 동남아 출장지에서 핸드폰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봤다. 호텔 로비 입구에서 외국인이 무슨 시커먼 벽돌 같은 것을 귀에 대고 통화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정신병자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한참을 쳐다봤던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붙들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가 없으면 업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태블릿을 가지고 다니며 비즈니스 상담을 한다. 하지만 기계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에 고맙다가도 사용해야 할 기계들이 늘어날수록 상대적인 피로감과 무력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자존심 때 문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똑똑한(?) 기계를 따라 잡기에는 힘에 부치는 내 능력의 한계와 열등감 때문이다.

작년에 기회가 닿아 남미를 여행하게 되었다. 당초 일정은 한국에서 미국 LA를 거쳐 남미에 도착하는 스케쥴이었지만 항공사 사정으로 출발 2시간 전에 갑 자기 비행기편이 변경되면서 LA가 아닌 시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남미로 가야하는 일정으로 바뀌어버렸다.

문제는 시카고 공항이 복잡하고 터미널이 흩어져 있는데다 입국심사와 탑승수속 절차가 까다로워 영어가 서툰 초행길 여행자에게는 쉽지 않은 코스라는 점이다. 환승해야 할 시간이 넉넉한 편이 아님에도 시카고 공항 제1터미널에 정시보다 늦게 도착했다.

길게 늘어 선 줄을 따라 입국심사를 기다리면서 당신들 늦은 거는 알바 없다는 표정의 공항직원 업무처리로 인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환승하기 위해서는 제2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모든 감각세포를 총동원해 겨우겨우 무슨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하면서 초조감은 점차 불안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다시피 마침내 도착한 제2터미널에서는 급기야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제2터미널은 항공사직원이 없는 무인 발권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줄지어 설치된 발권용 모니터만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으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 공항에서도 거의 써보지 않은 생소한 기계를, 말은 잘 통하지 않지, 갈아탈 비행기 시간은 촉박하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이 핑 돌았다. 힘이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쓴 문자만큼은 지금도 기억한다.

“아들! 시카고 공항에서 트랜스퍼하는 비행기를 탔더니, 이제는 우주선도 탈 수 있을꺼 같어...”

안양 신현호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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